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셀린 디옹 (문단 편집) === 2000년대 === >'''라스베가스의 여왕.''' >'''Queen of Vegas.''' >---- >― Statista[* [[http://cdn.statcdn.com/Infographic/images/normal/17245.jpeg|출처]]] 그러다 어느 날 남편 르네가 [[후두암]]에 걸려 활동을 중단하면서 남편 병간호에 나섰다. 다행히 르네의 병은 호전을 보였으며 시험관 시술로 아들까지 얻는 겹경사를 맞았다. 개인 새생활이 안정을 찾으면서 6집 'A New Day Has Come'[* 1200만 장 그해 판매 순위 2위.]와 7집 'One Heart'[* 600만 장]가 연이어 발매되었지만 예전만 한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라스베가스에서 장기 공연을 하면서 여전한 가창력을 발휘했다. 그 해에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판 앨범[* 1위는 [[에이브릴 라빈]]]을 중박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긴 하나, 그전 앨범들에서 워낙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인 것과 대비되는 점, 또한 6집에서는 전작들과는 달리 싱글 차트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을 보았을 때 확실히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셀린 디옹이 공백기를 가졌던 3~4년동안 인터넷의 발달로 불법 다운로드가 급증해 음반시장이 전세계적으로 붕괴 수준으로 급격히 몰락하던 시기였다. 물론 잘 팔던 가수들은 가끔가다 2000만장씩 넘기기도 했지만 2010년대 이후 부턴 유로 다운로드뿐만 아니라 스트리밍 시장도 급격히 성장해 이젠 1000만장 넘기기도 어려워졌다.] [[앨범]] 판매량도 어마무시 하지만 [[라이브]] 활동이 인상적인 디바로도 꼽힌다.[* 전성기 때는 파리 라이브에 이틀만에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어마무시한 티켓파워가 있었으니 그 위엄이 더 돋보인다.]그녀보다 라이브 콘서트 활동을 더 잘한 여가수로는 [[마돈나(가수)|마돈나]]밖에 없다. 몰론 셀린 디온의 곡 난이도도 난이도인 만큼 사전녹음도 대다수이긴 하다. 그러나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 중 라이브 활동을 뽑으라면 그녀보다 잘한 가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예시로 2007~09년의 'Taking Chances Wolrd Tour' 는 역대 라이브 투어 중 11위[* 여성 중 2위][* 1위 마돈나]21세기에 들어와서는 아예 [[라스베이거스]]에 공연장을 새로 지어 레지던스 쇼 형식의 공연을 하고 있다. 2003~07년의 'A New Day' 에 이어 2011년부터는 'Celine' 을 진행 중이다. 2019년까지 계약된 상태다. 셀린디옹의 콘서트 티켓은 2000~2009년에만 7.2억 달러, 환율 1,000원만 잡아도 7200억이 넘게 팔렸다. 또한 2006년쯤에 셀린 디옹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는 말이 나왔고 그것을 라스베이거스의 건조한 공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아예 공연 장소에 가습기를 설치했다. [[프랑스]]어와 영어 양쪽으로 나누어진 음악 활동으로 인해 라이브 투어 또한 세트리스트를 영어권 대상과 프랑스어권 대상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8년 콘서트인 Taking Chances World Tour에선 보스턴 라이브인 영어권과 몬트리올 라이브인 프랑스권을 따로따로 DVD로 제작하였다.]프랑스어권 세트리스트가 영어/프랑스어 곡이 대략 반반 섞인 구성인 데 비해 영어권 세트리스트는 한두 개 정도의 프랑스어 곡만이 포함되는 차이를 보인다.[* 셀린의 영어권 데뷔 이후 프랑스인들은 셀린의 프랑스어의 발음이 영어 발음으로 많이 치우쳐졌다는 말을 많이 하고는 한다.]이유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역대 프랑스어 싱글 중 유일하게 영국 차트에 들었기 때문인 듯 하다. 늘 끼는 곡은 'Pour que tu m'aimes encore'. 2008년 내한공연 당시 셀린의 코멘트는 '한 곡 정도는 프랑스어 곡을 불러야 해요' 였고 당연하게도 관객의 호응은 공연 전체에서 최하를 달렸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박수가 끊이질 않았다.] [[캐나다]] [[퀘벡 주]] 출신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 외에 [[일본]] 로컬 활동 이력도 특이한 점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일본]]에서 드라마 주제곡으로 사용된 'To Love You More'[* 현재 한국인들도 많이 듣는 셀린의 곡 중 하나이다.]는 서양인으로는 12년 만의 오리콘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고 'Be the Man' 은 아예 일본어판 싱글이 처음 발매되었다. 근래에는 2007년 'Taking Chances' 앨범의 'A World to Believe in' 에서 이토 유나와 듀엣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해서 월드 투어의 일본 방문 시에는 [[도쿄 돔]]과 [[교세라 돔 오사카]] 기본 방문. 'Taking Chances Tour' 에서는 [[일본]] 공연 입장료가 [[대한민국]]보다 훨씬 저렴하고 전체 개최국 중에서도 밑에서 2번째였을 정도이다. 내한 활동 경력으로는 '''[[1997년]]'''에 한번, [[2008년]]에 이은 두번째 내한 공연을 펼쳤다.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와 달리 보존을 잘한 가창력과 무대매너로 관객들을 감동시킨 바가 있다.[* 역대 내한공연한 아티스트 중엔 최상급의 모습만 보여주었다.]내한공연 동안 한국 [[힐튼]] 호텔에 투숙한 게 인상 깊었는지 한국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내한공연 후 캐나다 잡지에서 한국식 [[온돌]]에 앉아 아들과 같이 [[한복]]을 입고 앉아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그리고 1997년 내한공연 당시 마치 씨디를 틀어놓은 듯한 라이브였지만 씨디를 튼 게 아니냐는 의혹이 들 정도였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앵콜곡 한곡없이 공연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다만 저 두 가수의 내한 라이브 비디오가 있는 방면 셀린의 1997년 첫 내한 방문 때는 비디오가 없고 2008년 두번째 내한 비디오만 간간히 있는 편이다. [youtube(Hq25fHuOz9k)] 셀린이 선배가수든 후배가수든의 곡을 커버로 많이 부르는것 으로 유명하지만[* 대표적으로 [[티나 터너]], [[신디 로퍼]], [[프레디 머큐리]] 등등.][[퀸]]의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2008년인 Taking Chances Wolrd Tour을 시작으로 이후 줄곧 퀸의 Show Must Go On을 라이브로 선보이며[* Show Must Go On 공연 이전에는 We Will Rock You를 선보인다.]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프레디 머큐리]]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공연과 투어에 집중하며 앨범은 간간이 내고 있다. 2003년 이후 라스베가스에서 계속 진행 중인 그녀의 쇼는 이미 라스베가스의 상징이 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다음 가는 라스베가스의 최고 거물 가수로 등극했으며 그녀 이후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제니퍼 로페즈]], [[레이디 가가]]도 라스베가스 쇼에 참여하지만 그녀만 한 실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물론 레이디 가가나 제니퍼 로페즈도 라스베가스 레지던시로 전석을 매진했는데도 불구하고 셀린 디옹만큼의 실적을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 셀린 디옹을 라스 베이거스 쇼에서 뛰어넘는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기도 하다.] 2000년대 들어서 그녀의 활동은 싱글과 프로모션 활동보다는 콘서트와 공연에 집중하는 형태라 싱글 성적은 부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고정 팬층 덕에 앨범 판매량은 그럭저럭 나오고 있다. 'Taking chances'와 'Loved me back to life' 앨범 역시 350만 장, 150만 장 정도 팔렸다. 현재까지도 전성기의 가창력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오히려 파워는 전성기보다 조금 떨어졌을지 몰라도 전성기보다 더 깔끔한 목소리, 기교, 그리고 고음역대에서의 편안하고 완벽한 소리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목소리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어불성설일 것이고 20, 30대 당시의 카랑카랑한 미성에서 서서히 40, 50대의 깊고 굵은, 따스한 목소리로 변해왔다. [youtube(3PFgbLnUcZE)] [[휘트니 휴스턴]]이랑 [[머라이어 캐리]]는 [[소울 음악|소울]] 스타일 창법이었는데, 이쪽은 믹스 보이스가 뭔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셀린 디온의 대표곡인 'I surrender가 사례다. 듣다 보면 머리가 아플 정도.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는 사생활에서도 구설수가 나왔는데, 셀린 디옹은 남편인 르네 앙젤릴과도 사이가 좋았다. 물론 구설수는 나오지도 않았다. 약물이나 술에는 입도 대지 않고, 스스로를 빈틈없이 다스렸기 때문이다. 휘트니 휴스턴이 숨을 거두었을 때, 나온 인터뷰에서 마약이 그녀의 모든 것을 뺏어갔다고 화냈다. 더구나 흥청망청거리는 분위기가 싫어서, 뒤풀이 파티에도 안 간다고 한다.[* 그 할리우드 연예계에서 정말 보기 드문 유교걸 느낌이다..] [[크라이슬러]]와도 연이 깊은 가수이다. [[1980년대]] 및 [[1990년대]]에 [[캐나다]] [[퀘벡 주]] 프랑스어 광고에 주로 출연한 바 있었으며, 이후 [[2004년]]에 [[크라이슬러 퍼시피카(구)|퍼시피카]] 및 다수 [[크라이슬러]] 라인업 광고에 목소리 및 출연을 한 적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